공황장애와 PMS(생리 전 증후군)를 앓으면서 삶의 고단함을 느끼는 남녀. 그런 두 사람이 ‘그럼에도 서로를 도울 수 있다’며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미야케 쇼 감독(<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 세오 마이코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 <새벽의 모든>이 2월 9일 개봉한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정식 출품이 정해지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NHK 연속 TV 소설 <컴 컴 에브리바디>(이하, 컴 컴)에서 부부를 연기하고 이번 작품에서 다시 한번 만나게 된 마츠무라 호쿠토(‘SixTONES’)와 카미시라이시 마이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글/편집부, 사진/마니와 유키)
PMS로 짜증를 억누르지 못하는 후지사와(카미시라이시)는 어느 날, 동료 야마조에(마츠무라)의 사소한 행동으로 인해 분노를 터뜨린다. 그런데 직장을 옮긴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의욕이 없어 보이는 야마조에 역시 마찬가지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 여러가지를 단념하고 삶의 보람도 기력도 잃어버렸다. 회사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친구도 연인도 아니지만 어딘가 동지같은 유대감이 피어오르는 두 사람. 어느새 자신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아도 상대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미야케 쇼 감독은 이번 작품을 만들게 된 중심에 대해 ‘한 쌍의 독특한 남녀가 연애 이외의 관계로서 어떻게 서로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그리는 가능성’이라고 언급했다. 후지사와의 ‘(야마조에와는) 어쩌다보니 옆자리에 앉게 되었을 뿐’ 이라는 대사처럼, 연애로 발전하지 않고 동료로서 그저 ‘옆에 있던’ 두 사람. 그런데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함께 위기를 넘긴다. 공황장애와 PMS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지켜 본 상실감을 그리고 있는 부분도 놓칠 수 없다.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괴로운 나날이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어서 호흡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작품은 그런 두 사람의 소소한 나날을, 그들을 응시하고 있는 일상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와 함께 포착한다.
– 두 분은 공황장애와 PMS라는, 어느 하나도 사람들이 알아보기 힘든 병을 앓고 있는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일상과 증상이 나타날 때의 차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힘든 부분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연기하면서 어떤 점을 의식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카미시라이시: 후지사와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선 예사롭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느닷없이 직장 동료의 집에 쳐들어가서 머리를 잘라준다든지, 부적을 잔뜩 사서 “여기요”라며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든지. “저 평범한데요?” 라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 되게 이상한 사람이잖아요 (웃음). 후지사와를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넘어서야 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카미시라이시: “어떻게 하면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의 머리를 자를 수 있을까?” 등의 의문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재밌어 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상상을 부풀리면서 역할을 만들어나갔어요. 후지사와와 야마조에의 중요한 에피소드에서 덜거나 다시 더해보면서 “어떤 사람이어야 영화가 완성될까” 하면서요. 그 결과, 현장에 가서 마츠무라 씨와 맞춰보는데 “이제까지 했던 고민은 뭐였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마츠무라 씨가 들고 오거나 준비해서 오신 것과 나머지는 미야케 감독님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게 마련해주신 환경 덕분에 짜증나는 감정이 잘 녹아든 촬영이었어요.
마츠무라: 야마조에는 공황장애를 스스로 이겨내고 싶어 해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나 이제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무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공황장애와 PMS가 병명으로 드러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야마조에의 인간성이나 이야기의 성격을 떠올려보면, 스스로 연기하면서 어떤 감정을 드러내고자 계산하는 것처럼 보이면 좀 별로라고 할까, 분명 세오 씨의 원작에서도 멀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츠무라: 그는 자신의 인생에 굉장히 필사적이기 때문에 얼마나 동정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연기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경이 쓰이는 게 정답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조차도 느껴지지 않게끔 연기하는 게 사실 균형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는 동안 미야케 감독님이 좋은 장면을 찍어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 마츠무라 씨는 ‘이번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배역의 상태로 있기 보다는, 연기한 뒤에는 한번 마츠무라 호쿠토라는 자신으로 돌아와서 모두와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대로 가졌던 거 같아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접근법은 연기에 어떤 효과가 있었나요?
마츠무라: 극중에는 “아슬아슬하게 미묘한” 부분이 많이 있어요. 왜냐하면 야마조에의 집에 두 사람이 있는 시간이 꽤 길고, 집이 넓지도 않은데다가, 두 사람의 몸이 가까이 있잖아요. 아무래도 젊은 남녀가 둘만 있으면 자신들의 마음이 편한 것과는 별개로, 보는 사람은 어떻게든 이성 간의 기류를 느끼게 되죠. 한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특히 미야케 감독님은 늘 약간 떨어져있는 상태에서 지켜보고 계시는데, 가끔은 셋이서 같이 둘의 관계를 바라보지 않으면 (거리감을 연기하는 게) 어려운 순간이 있거든요. 분명 두 사람의 인생에서 그런 식의 (이성 간의) 거리감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게 아니라 다른 부분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 후지사와의 시점에서는 영화의 초반에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카미시라이시 씨는 그 동안의 후지사와의 인생을 상상해보기도 하셨나요?
카미시라이시: 상상해봤어요. 과거 장면은 아무래도 몽타주 적으로 PMS로 힘들어하는 부분을 편집해서 보여주잖아요. 그 시기를 상상해보면 정말이지 “밑바닥에서의 지난 몇 년”라는 이미지가 되기 쉽지만, “그래도 즐거운 일이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PMS는 생리 전에 며칠만 나타나는 증상이니까 그 이외의 시간에는 평범한, 당연한 일상 생활을 하는 후지사와가 있고, 그럼에도 그 주기가 되면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고. 계속해서 그 두 기간을 외롭게 반복하고 있었겠구나,라고 상상했어요. 괴로웠던 일들이 영화에 많이 부각되었지만 야마조에를 만난 뒤처럼 평온한 시간도 있었을 거예요.
- “빛과 어둠”까진 아니어도, 후지사와는 계속해서 두 주기를 반복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중에서 어두운 시기보다는 밝은 시기를 상상하신 거네요.
카미시라이시: 유유히 빠져 나오는 시기도, 하지만 역시나 뭘 어쩌지 못하는 시기도 모두 있지 않았을까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달에 한 번은 경험하니까요. 저도 여성이니까 생리 전이나 생리를 할 때의 괴로워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아, 이거구나” 하고 느꼈어요.
– 두 분은 ‘컴 컴’ 이후로 오랜만에 연기 합을 맞추셨습니다. 두 번째로 같이 작품을 하면서 잘 맞았던 부분이나 지난 작품 이후 시간이 흘러서 생긴 변화 등 서로의 인상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마츠무라: 저는 다시 같은 작품에 나온다는 편안함과 ‘컴 컴’ 때 “많은 걸 등에 이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제멋대로 가지고 있었어서 크게 의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컴 컴’ 때는 완전히 “야스코” 그 자체였잖아요.
카미시라이시: 그 말투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웃음). ‘컴 컴’은 쇼와 시대였고 이번 작품은 현대, 맡은 역할의 성격도 나이대도 정반대라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대치가 되었죠. “그런가, 그러고보니 부부 역할을 연기했었네”라며 전생의 감각으로요 (웃음). 한 번, 목숨 걸고… 라는 시대의 두 사람을 서로 연기해봤으니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관계를, 0부터 어색함 없이 쌓아올릴 수 있었어요. 어떤 작품에서 만나도 호흡이 잘 맞아서, 편안하게 작품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 야마조에와 후지사와가 불안정할 때 서로 의지하는 장면이 많이 그려집니다. 두 분은 일상 생활에서 분노나 슬픔을 느낄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카미시라이시: 제가 이 두 사람은 좋겠다, 생각했던 부분은 “마음 속으로 감추고 있는 건 좋지 않으니 얘기해 줘”라는 스탠스가 있다는 거였어요. 상대방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패턴도 있겠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직접 말할 수 없으면 문자로도 좋고요. 밑으로 가라앉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든요. 두 사람은 병과 싸우고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있으니까 강한 거예요. 영화에 “공황장애니까 그럴 수 있어서 좋겠네”라는 대사도 있어요. 그걸 말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고, 상대에게 신경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자신을 위해서 말로 꺼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카미시라이시 씨는 말이나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고 하는 편이신가요?
카미시라이시: 네. 왜 화가 나있는지, 왜 무서워하는지를 글자로 쓰지는 않지만 일일히 따져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납득이 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뭐야, 이 찝찝한 감정은”이라며 곱씹어보는 일이 종종 있어요. 회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맞서려고 하는 편이에요.
마츠무라: 저는 힘들거나 부정적인 일들은 한 번 탱크에 가득 채워넣지 않으면 좋은 일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전혀 성장하지 않는 시기를 보내다가 갑자기 잘 되는 것처럼요. 실제로 예전에 가라테를 배운 적이 있었거든요. 연습을 하고 또 했는데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고, 다들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었죠. 그런데 열심히 계속 했더니 어느 날 저를 앞질렀던 사람을 역전할 정도로 갑자기 확 성장했어요. 그러니까 힘든 일이 있어도 “탱크를 채우고 있는 한창이구나” 하고 버티고 있어요.
– 점점 마음이 가라앉거나 하지는 않으세요?
마츠무라: 그렇죠. 괴로워도 “이걸 계속 하는 수밖에는 없어”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힘든 일은 찾아도 오지 않아요. 힘든 일이 오면 탱크를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요. 그렇게 한 번 성장하면 또 다시 탱크를 채우기 시작하는데, “인생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웃음).
카미시라이시: 대단한데?
– 두 분이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뭔가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카미시라이시: 야마조에의 집 위에서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갑자기 알려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거든요. 둘 다 삐딱해져선 “신난다!” 이렇게는 안 되지, 라고 했었죠.
마츠무라: 이 이야기의 발단은 아침 드라마였죠. 아침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의 저와 방영된 지 15분이 지난 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길에서 사람들이 “미노루!”라고 말을 걸어와요. 저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미노루라는 배역이 매력적이니까 “혹시 그는 엄청난 배우가 아닐까”라는 눈으로 봐주시기 시작한 거죠. 너무 무서워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카미시라이시: 저도 겁에 질린 채로 “완전 알아요, 무섭죠”라고 맞장구치면서 깊이 공감했죠.
마츠무라: “나 인정받았어!”가 아니라 “아니, 나는 전혀 변한 게 없는데” 이렇게요.
카미시라이시: 그래서 ‘컴 컴’의 방영 중에도 분명 같은 감정을 가지고 그 시기를 보냈겠구나 생각했었죠.
–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소통을 하는 방식에 대해, 이번 작품을 통해서 발견한 게 있나요?
카미시라이시: 나란히 앉아서 수다를 떠는 건 참 즐거운 거구나, 이렇게 뭐든지 말할 수 있구나. 두 사람은 마주 보면서는 대화를 잘 하지 않아요. 미야케 감독님도 “옆에서 얼굴을 보지도 않고 수다 떠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고 하셨을 때, “진짜 그렇네요”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옆에서 들어줄 때 말을 꺼내기가 쉬워지기도 하잖아요? 마주보는 게 꼭 정답은 아닐 수 있겠구나. 이번 작품에는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라는 힌트가 있는 것 같아요.
마츠무라: 저는 미야케 감독님 옆에도 앉아 있었든요. 야마조에의 집 장면은 조명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미야케 감독님도 저도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자신 있는 주제를 이야기 할 때만 반응이 궁금해서 슬쩍 봤었어요 (웃음). 그때 대화를 나누다가 “후지사와와 야마조에는 이런 거구나. 나쁜 뜻이 아니라, 상대의 눈치를 안 보고 옆에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 기간 동안 야마조에와 후지사와의 소통 방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두 사람은, 인터뷰에서도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목소리의 귀를 기울이면서 이따금씩 시선을 주고 받는 모습은 확실히 야마조에와 후지사와와 겹쳐 보여서, 그 편안한 대화를 영원히 듣고 싶어졌다. 두 사람만의 거리감과 분위기와 더불어 한없이 매력적인 “수다”가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